2024. 11. 18. 17:57ㆍBook
아기 낳고 나서 육아서 외에 처음 집은 책이 바로 이 <<사피엔스>>. 대체 며칠에 걸쳐 읽은 건지... 물론 이 책이 참고문헌 빼고 593페이지 짜리긴 하지만, 그 양을 고려한다고 해도 책 한 권 읽는 데 엄청 오래 걸렸다. 장장 5개월!
책을 펼치면 간지에 바로 보이는 말. "From one Sapiens to another." 이 책을 쓴 작가와 나는 같은 '사피엔스'라는 점에서 알 수 없는 소속감(?)이 들어서 책을 읽는 데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문단 한 문단 곱씹으면서 읽었다.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도 있어서 여러 번 읽은 부분도 많았고. 쉽게 술술 읽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꽤 있었던 책. 특히 '경제'쪽은...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선택해놓고 결국 이수하지 못했던 내 대학시절도 생각나고 ㅋㅋㅋ 거시경제는 C+을 받았었지. ㅡ.ㅡ 교생실습 기간이랑 겹치긴 했었지만 그래도 너무 못하긴 했어 ㅋㅋㅋㅋ
이 책은 정말 거대한 담론을 풀어놓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아우르며 설명하고 있는데, 작가가 역사나 현실을 꿰뚫어보는 남다른 시각을 갖추고 있어서 읽는 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건 좀 아닌데...' 싶은 분석이나 주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엄청 공감하면서 읽었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에는 못 미치지만, 내 일상의 작은 고민들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나는 좀 더 행복한 사피엔스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려면 내 현실의 본질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꿰뚫어보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일단 내용의 큰 얼개는 "선사시대 이전의 사피엔스와 지금의 사피엔스 둘 중에 누가 더 행복한가? 사피엔스는 그래서 더 행복해졌는가"라는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을 읽고 난 내 결론은 "Who knows?"이다. 생각 하나로 많은 걸 바꾸는 게 바로 사피엔스라서. 생각이나 미신, 믿음, 사회적 합의 같은 추상적인 사고를 통해 자기 자신과 사회를 지배하는 종족이라서. 온갖 기술과 가젯에 둘러싸여 몸은 더 편해졌겠지만 마음은 비교적 더 불편해져버린 현대인에게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를 설명해주는 내용이라서 읽는 내내 참 편안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구절을 갈무리한다.
인류가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한 결과 막강한 변화의 힘이 생겼고 이것이 아무도 예상하거나 희망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일부러 농업혁명을 구상하거나 인간을 곡물 재배에 의존하게 만들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배를 좀 채우고 약간의 안전을 얻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은 일련의 사소한 결정이 거듭해서 쌓여,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타는 듯한 태양 아래 물이 든 양동이를 운반하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사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 만일 적나라한 신체적 능력만 중요했다면, 사피엔스는 먹이 사다리의 중간쯤에 존재했을 것이다. 우리가 최상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사회적 기량 덕분이다. 따라서 우리 종 내의 권력 사다리도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남자가 신체적 힘으로 여자를 강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안정적인 사회적 위계질서의 토대라고 믿기는 어렵다.
'옵저버'에서 저자인 노아 유발 하라리의 인터뷰집을 냈다고 한다.
1. The history of humankind and its battles with war, plague and genocide
인류가 전쟁, 질병, 대학살과 싸워온 역사
2. Predictions for the future of humankind, such as the rise of biotechnology and artificial intelligence
인류의 미래(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의 발전과 같은)에 대한 예측
3. Vipassana meditation, which Harari practicces for two hours every day in addition to a yearly month-long silent retreat
하라리가 매일 2시간 동안 수행하는 비파사나 명상법과 1년에 1달 간 하는 묵언수행
이 세 가지 주제에 대한 질문을 트위터(@ObsNewReview)나 이메일(review@observer.co.uk)로 보내면 그 질문을 바탕으로 2017년 4월 2일 런던에서 저자가 직접 나와 옵저버 편집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완전 부럽다. 이럴 때 외국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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