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 조영래 지음, 2001, 돌베개

2024. 5. 17. 18:00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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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평전 | 조영래 - 교보문고

전태일평전 | 전태일 50주기 기념 『전태일평전』 개정판 출간 가독성 높인 편집, 주석과 연표 보강오늘의 전태일들과 함께 2020년은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되는 해다. 1970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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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한국에서 일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고전

대학을 졸업하고, 정규직으로 첫 회사를 다니던 어느 날, 나는 어느 록페스티벌에서 열심히 놀고 있었다. 같이 놀던 첫 직장 사수의 남자친구는 저널리스트를 꿈꾸며 한국에서 공부하며 외국인들 대상의 잡지를 만들던 캐나다 사람이었다. 그가 물었다. "Have you ever read 전태일's critical biography?" 나는 읽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돌아온 답은, "You're working, right? Shame on you!" 웃으며 꼭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짐한지 15년이 지나 40대가 된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전태일 평전>>을 마주했다. 그 사람의 말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이번에는 꼭 읽어보리라는 심산으로 책을 빌렸다. 그리고는 사흘 내리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이성과 감정이 적절히 섞인 힘 있는 문체는, 전태일 열사를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피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좌절감을 오롯이 자신의 두 어깨에 얹고 시대를 개척한 열사로 울림 있게 전달했다. 이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님은 책상에 앉아 어떤 마음으로 이 모든 글을 쓰고 엮었을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분노했다. 전태일 열사의 가난을 보면서도 분노가 치밀었고, 노동 환경 개선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용자들의 작태를 보면서도 분노했다. 

전태일 열사 덕에 내 노동 조건이 이 정도 나아진 거라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월급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일하면서 일말의 행복감이라도 느낄 때는 꼭 그를 떠올릴 것이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콘텐츠로도 만들어져 '우리역사넷' 누리집에 실려있다. 아이가 더 자라면 꼭 같이 읽어볼 것이다.

 

우리역사넷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부근의 평화시장 앞에서 한 청년이 큰소리로 외치며 뛰어나왔어요.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몸은 불길에 휩싸였지요. 이 청년이 바로 전태일이에요. 그는 왜 우리는 기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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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옮겨 적었다.



"동아일보 1971년 신년호는, 6.25가 1950년대를 상징하듯, 4.19가 1960년대를 상징하듯, 전태일의 죽음은 1970년대의 한국의 문제를 상징하는 가장 뜻깊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11월 13일 직후 한동안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던 언론기관들의 논설은, 학생, 노동자, 종교인을 주축으로 한 전태일투쟁이 격화되면서부터는 태도를 바꾸어 노동자들의 참상을 폭로하고 노동행정의 실태에 비판을 가하며 '노동정책의 일대 전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 1970년대에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던 노사문제가 이와 같이 1971년도에 이르러 일약 일곱번째 문항으로 등장한 것 자체만으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태일 사건이 던진 충격에 전 사회가 얼마나 동요되었던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전태일의 몸을 불사른 불꽃은 '인간 선언'의 불꽃이었다. 그것은, 불의의 힘이 아무리 강성하여도 그리하여 그것이 아무리 인간을 짓누르고 무력화하고 파괴하여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끝내 노예일 수 없고 끝내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그 폭탄적인 진실을 온몸으로써 증명한 인간 역사의 영원한 승리의 기념비였다.... 인간을 불구로 만드는 권력이 존재하는 한, 억압과 착취가 인류사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지 않는 한, 전태일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1부 어린 시절
"맑은 가늘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끝없는 가난과 질병, 중노동과 멸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며, 평생을 통하여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사람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열등의식 속에서 살게 마련이다.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소년소녀들이 학생복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같은 나이 또래들을 쳐다보는 그 쓸쓸한 눈망울에 담긴 패배감, 좌절, 자학, 절망 .......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자식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부모들이 학교에 다니는 남의 집 자식을 볼 때의 그 가슴 찢는 괴로움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전태일의 정신적인 성장과정 가운데에서 이 당시에 이미 자신을 거부하는 '부한 환경'의 현실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현실과 싸워 이기려는 분명한 의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가 남들처럼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을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사인 것이다. 그 현실의 가장 깊은 질곡 한가운데에서 몸부림치면서, 자기의 심장으로 느끼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할 수 있었던 사람이야말로, 교과서의 해설이나 권위자의 암시를 통하여 왜곡되는 일이 없는 현실의 벌거벗은 모습을 생생히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야말로, 현실로부터 가장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인간성을 가장 열렬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셋방을 얻은 지 두 달쯤 지난 후에 태일은 천호동 보육원에 가서 순덕이를 데리고 왔다. 집에 데려다놓으니 바보처럼 멀뚱하니 앉았기만 하고 어머니를 보고도 반가운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처음 한동안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 있곤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면 선생님께 야단 맞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2부 평화시장의 괴로움 속으로
"인간시장의 편장 평화시장. 1966년 전태일은 그 속에서 하루하루의 생명을 팔고 있었다. 매일매일 겪는 자신의 고통, 그리고 숱한 동료 노동자들의 참상을 보면서도 그는 아직 그 근본원인이 무엇인가를,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현재의 모든 고통은 그저 주어진 운명이며, 그 운명에 순종하여 열심히 일만 하면 모든 문제가 차차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일까? 내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 없이 그저 힘껏 노력하여 돈만 벌고 나면 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였던 것일까?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다. 전태일의 경우에도 평화시장 생활이 길어지면서 어느샌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라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그의 수기에서 읽을 수 있다."

"... 스스로 재단사가 되어서 자기가 일하는 공장 안의 어린 노동자들을 개인적으로 돌봐주고 그 공장 안에서 업주와 노동자들 사이에 생기는 공임타협 등 몇 가지 문제들을 다룰 때 노동자들 편에 서서 업주들로부터 '정당한 타협'을 이끌어내겠다는 데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보여진다."

""......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해버린 인간 그 자체였다. 아니 시다들이나 미싱사들만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도 그러하였고 그의 눈에 비쳐오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불행한 세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로 전락' 해버렸다는 것을 그는 시간이 감에 따라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 꿈틀거리는 힘찬 근육과, 펄펄 끓는 젊음의 피와 모든 사상과 감정과 의지와 희망과 꿈을 박탈당하고 박제된 인간.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노동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며 밥 먹고 자고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내'가 아니다. 참된 '나'는 어디론가 종적없이 사라져버리고, 헛껍데기만 남은 나의 육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이리저리 온종일을 허덕이며 끌려다닌다. '나 자신'이라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되살아나는 것은 퇴근시간이 될 때 잠깐뿐이라는 전태일의 표현은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가! 그러나 그는 온종일 제정신을 잃고서 그저 목숨은 이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명령 아래서, 강자의 현실이 만들어놓은 틀 속을 일하는 도구가 되어 기계의 톱니바퀴인 양 돌아가야 한다. "참 인간의 본능과 모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로 ......."


3부 바보회의 조직
"... 우리는 당당하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살 권리가 엄연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태껏 기계 취급을 받으며 업주들에게 부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번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니 우리 재단사들의 모임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이것을 우리가 철저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래야만 언젠가는 우리도 바보 신세를 면할 수 있다."

"누가 바보이며 누가 바보가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뜻하는가? 남의 등을 밟고 올라서는 사람, 남의 피땀의 성과를 가로채는 사람, 남을 속이며 남으로부터 절대로 속지 않는 사람,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치며 남으로부터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람, 그리하여 돈을 벌든지 권력을 잡든지 하여간에 '출세'를 해서 세상 사람들의 찬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명예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른바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들이다. 

  이런 '똑똑한 사람' 말고 또 한 부류의 '약은 사람',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은 '현실롸 타협' 할 줄 알고 '현실에 적응' 할 줄 아는, 이른바 처세에 능한 사람들이다. 강자에게 절대로 저항하지 아니하고, 어떤 부당한 취급을 당하더라도 고분고분 고개 숙이고 받아들이며, 반대로 약자 앞에서는 허리를 뻣뻣이 펴고 헛기침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처세 철학 제1조이다. 그들의 사전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나 강한 자에 대한 저항이라는 말이 없다. 일제 36년의 억압과 지배의 현실, 해방 이후의 정치적 격동, 그리고 6.25의 혼란을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남았던 기성세대는 이러한 비굴한 처세철학을 뼛속까지 익힌 '현명한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세상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에게 '잘난 사람'이 될 것까지는 기대할 수 없어도 최소한 이러한 '약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그뿐인가? 강자들이 판을 치는 모든 사회기구가 한결같이 새로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은 '적응', '타협', '겸손', '순종', '온건' 등의 '미덕'이다."

"... 원래 그 책(근로기준법 해설서)은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씌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학력이라고는 국민학교에 2학년, 중등 정도의 공민학교에 한 1년 다닌 것밖에 없는 태일이 그 대학교재를 붙들고 씨름하자니 여간 일이 아니었다. 몇 페이지만 념겨도 전문적인 법학상의 개념과 법률용어들이 수두록하게 나오니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몇 장 읽다가 책을 덮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일은 하룻밤을 꼬박 새워 한 장밖에 못 보는 한이 있더라도 책을 놓지 않았다. 이때부터 그는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한다. 


4부 전태일 사상
"밑바닥 인간인 전태일은 '소외'라는 어려운 철학용어를 알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빌려난 소외된 인간의 아픔을, 그 시대의 모순을 이렇듯 정확하게, 생생하게, 절실하게 지적한 표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밑바닥의 체험 속에서, 시대의 모순에 못박혀 존재의 극한상황에 선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전체 인간조건을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전태일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현실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 또한 관념과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한 체험의 세게였다.

"...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과거는 아니었다. ... 그의 가난함은, 그의 배우지 못함은, 그의 얼굴에 팬 어둡고 우울한 그늘은, 그의 비천함은, 그의 잔약한 체구와 질병은, 그의 돼지우리 같은 집과 그의 초라한 차림새는, 그가 '무능한' 한낱 노동자임은, 그 모두가 사회라는 거대한 기구가 지워준 십자가였을 뿐 결코 그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일 뿐이었다. 그는 이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리면서도 너무나도 정당하게 한 인간으로서의 생존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세상은 그의 불우한 과거를 보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마저 자신의 과거를 손가락질한다면,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한다며  그것으로 그는 주체성을 잃은 인간, '현실과 한패'가 되어버린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 전태일의 1969년 12월 31일 일기에서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살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 1970년 8월 9일"

"소시민적인 안일한 삶에 연연하는 일부의 지식인이나 종교인들이 상투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할 때에 우리는 그것이 그야말로 단순한 '동참', 억눌린 사람들의 주위에서 얼쩡거리며 배회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을 흔히 본다. 전태일의 경우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결코 이런 식의 어정쩡한 얘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목숨을 들어 돌아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투쟁, 타협 없는 투쟁,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거는 단호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물론 이제 전태일에게 있어서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을 위한 투쟁이란 곧 비인간적인 현실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는 모든 인간상을 위한 투쟁을 뜻하는 것이었다."


5부 투쟁과 죽음
​"우리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에 비틀거린다면, 우리 사회의 신문 역시 강한 자, 부유한 자의 속성에 비틀리고 있다. 신문사의 주인은 대재벌급의 기업가. 그들이 밑바닥 인생들의 문제에 기본적으로 관심을 표시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자기의 신문경영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치권력의 비위를 일부러 거스를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신문경영도 하나의 장사이므로 신문을 사보는 독자들의 구미에 당기는 기사를 제작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신문의 독자층이래야 대체로 중산층이다. 그들의 구미를 맞추려면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신문경영자들은 판단한다."

"엉터리 비폭력주의자들의 무엇이라고 말하건 건에 데모란 상대편의 양심이나 자비심이나 동정심을 구걸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쪽 편의 실력(그것이 선거에서의 투표권이든, 적나라한 폭력이든, 사회여론에 대한 영향력이든 간에)을 배경으로 한 상대편에 대한 공갈인 것이다. "제발 이렇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 데모가 아니라, "이런데도 네가 말을 안 듣고 배기겠느냐?"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데모인 것이다.
...
억압자에 대한 오랜 굴종을 벗어던지고 1 대 1의 당당한 선전포고를 알리는 데모 행렬의 진군의 북소리는 일상생활의 비굴에 잠겨 있던 모든 민중의 피를 끓게 한다. 그들의 북소리는 착취와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강요된 민중의 침묵이 오래고 굳은 것이면 굳은 것일수록 더욱 크게 울려 온다. 그리하여 억압자의 깊은 죄의식으로 신경과민이 된 귀에는, 그것은 자신의 종말을 알리는 불길한 '조종'의 첫소리로 들려오는 것이다. ... 역사상의 모든 억압자들의 '양보', 민권의 '평화적'인 승리란 본질적으로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졌던 것이다. 

"평소에 쓰레기 취급을 당하던 밑바닥 인생들도 선거철만 되면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의 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사람 대접을 받고 다소 활개를 펴게 마련이다. 선거 때마다 판잣집 철거가 중단되고, 곳곳에 새 판자촌이 생기고, 취로사업이 확장되고, 밀린 노임이 청산되고, 농협 융자금이 풍성해지고 하는 것은 다 그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그 동안 바보인 척 죽어지내던 서민들이 용기를 내어 제가끔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투쟁을 전개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그렇게 심한 제재가 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1971년도까지의 한국의 정치계절 풍경도였던 것이다(민주주의 혹은 정치적 자유라는 것도 이렇듯 민중의 생존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이 필연적으로 정치운동의 성격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폐되어 껍데기를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한 인간의 그의 인간성을 풍성하게 하는 과정은 곧 좁은 자아의 환상을 버리고, 그 껍데기를 깨고, 자신과 이웃과 세계에 대한 참되고 순수한 관심의 햇살이 비치는 곳을 향하여 나오는 과정을 뜻한다. 참된 소망, 참된 사랑, 참으로 순수한 그리움만이 인간을 구원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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