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 전혜진, 2019, 구픽

2023. 6. 21. 12:59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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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일지 대강 느낌이 온다.이 소설은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임신지옥과 출산지옥을 자세히 소개하는 책이다. 나는 올해 여섯 살이 된,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 온 에너지를 쏟아서 사랑해주고 싶은 이 아이에게 온 몸의 장기를 빼주고 세상과 하직할 수도 있지만, 임신과 출산은 지옥이라는 단어 없이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육아 지옥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생략하기로 한다...   

​임신 전에는 임신이 정말 아름다워보였다. 광고에서처럼 흰 리넨 임부용 원피스를 입은 임산부가 행복한 표정으로 둥글게 부푼 배를 쓰다듬고, 드라마에서처럼 때가 되면 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헌신적인 의료진의 도움으로 아이를 낳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임신의 전부였다. 아이를 낳은 친구가 주위에 있었지만 임신, 출산의 과정을 낱낱이 들을 기회도 없었고 나는 성인이 되기 전부터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임신, 출산이 대체 어떤 건지 간접적으로도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임신을 하게 되면 거의 누구나 ‘축하한다’는 말을 적어도 한 두번은 듣는 게 보통이다. 나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 축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새 생명을 잉태했음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나는 무조건 생글생글 웃으며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축하와 기쁨의 순간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하루, 이틀 만에 끝나버렸다. 나는 이제 무조건 ‘고맙습니다’라며 웃을 수 없었다. 준비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고, 이 모든 일을 배우자와 일일이 의논하여 해결할 자신도 없고, 일상 생활에 제약도 많이 생겼고, 몸도 당연히 임신 전과 달라졌고, 마음도 많이 달라졌다. 임신 초기를 무사히 넘기고 중기에 뜻하지 않은 일로 가진통을 겪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라보파를 맞으며 지내기도 했다. 새벽 3시 반에 양수가 터져서 7시 12분에 출산한 나는 운이 정말정말 좋은 편이었다. 무통주사 맞을 시기를 놓쳐서 못 맞고 진통을 그대로 겪으며 자연분만을 했고 회복과정도 원만했다. 임신지옥과 출산지옥을 지나오면 이제 육아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낳고 한 4년 간은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2시간씩 잠을 쪼개서 자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달리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풀려면 나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배우자의 헌신적인 협조, 물리적인 여건, 아이의 여건, 그리고 나의 여건. 이 네 가지 조건의 쿵짝이 맞아야 혼자 쉴 수 있는데, 그런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내 경험과 비슷한 경험을 이 책에서 생생하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르뽀에 가깝고, 다큐에 가깝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이라는 마크가 붙어있다. 임신 육아에 관한 좋은 책들이 더 많이 쏟아져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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