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열두 방향 / 어슐러 K. 르 귄, 2004, 시공사

2023. 6. 12. 00:37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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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제3권 『바람의 열두 방향』.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경계를 뛰어넘어 문학의 미래를 제시한 작가 어슐러 K. 르 귄의 초기 걸작 단편집이다. 저자가 1975년 발표한 첫 번째 단편집으로,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르 귄의 한결같은 주제가 인류학, 심리학, 철학,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풍부한 문학적 은유와 아름다운 문장으로 구현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 가장 낭만적인 작품이라 평하는 《샘레이의 목걸이》를 시작으로, 이상적인 도시 오멜라스를 배경으로 ‘희생양’ 테마를 섬뜩하게 제시한 휴고상 수상작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20세기의 파리와 15세기의 파리를 오가며 인간의 고독을 경쾌하게 풀어낸 데뷔작 《파리의 4월》,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에 빛나는 《혁명 전날》까지 17편의 초기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저자
어슐러 K 르 귄
출판
시공사
출판일
2014.12.05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을 언젠가는 꼭 몰아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몰아서 볼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듯하다. 단편 모음집이지만, 단편 하나하나 생각할 거리가 참 많고 이해하는 데도 좀 걸려서, 이 책을 읽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샘레이의 목걸이>, <명인들>, <겨울의 왕>, <땅속의 별들>, <시야>,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혁명 전날>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나는 중세 판타지물과 스타트렉 같은 sci-fi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작품들을 더 몰입해서 읽었던 것 같다. 인간과 사고방식, 문화, 언어, 행동 양식이 전혀 다른, 우리와 연관성이 전혀 없는 외계 생물체가 너무나도 당연한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 자체에서 잔잔한 충격을 받고, 내용 전개에서 또 2차적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수업을 듣다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영문으로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 한글로 읽었는데, 모국어로 읽어서 그런지 영어를 잘 못했어서 그런지 ㅋㅋㅋ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앉은자리가 배설물로 가득하고, 옥수숫가루와 기름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하며 지하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아이가 있어야, 일상을 그럭저럭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는 오멜라스 사람들. 그 사실을 알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슬프지만 아이를 풀어줄 경우 사라질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어 그저 지내는 사람들.  

드라마 <굿 플레이스>를 보면, 악한 일 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도 지옥에 상응하는 Bad Place에 온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남에게 물리적 해를 끼치지 않고 법을 지키며 살았더라도, 한 개인이 하는 행동이 무수히 많은 악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기를 주로 먹는 착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고기를 만들려면 동물을 키워야 한다. 동물을 키우면서 분뇨 때문에 환경오염이 생기고, 식량 부족 국가에 돌아가야 할 옥수수나 기타 곡물은 동물 사료로 쓰여 그 사람이 먹을 고기를 살찌우는 데 쓰인다. 현대인의 행복은 전 세계 누군가에게 고통을, 혹은 환경에 오염을 가하는 행동들을 기반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나는 오멜라스에 사는 사람이다. 나는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 우주선 탑승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말고는 이곳을 떠날 방법이 없다.  그저 내가 사는 곳을 덜 오염시키고자, 내가 여기 살다가 가는 흔적을 없애고자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부채의식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아이를 키우면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무책임한 행복은 오멜라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 응답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있다. The Ones Who Stay and Fight. N. K. 제미신이 쓴 작품이라는데, 이것도 그다음 책을 읽고 나서 읽어보아야겠다.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의 첫 작품으로 수록되었다고 한다.

 

아래는 뉴욕타임즈 책 소개 칼럼에서 The Ones Who Stay and Fight를 다룬 기사이다.

 

New Sentences: From N.K. Jemisin’s ‘The Ones Who Stay and Fight’ (Published 2019)

To “glean” means to pick grain out of a threshed field — or, these days, knowledge from the air around us.

www.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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