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22. 10:38ㆍBook
2015년 5월 15일 읽기 끝마침.
혼자 서점에 들렀던 날이다. 처참히 깨진 마음으로 혼자 걷다가 회사에서 시장 조사 겸 서점 방문 보고서를 쓰라고 했던 게 기억나서 지도 맵을 켜서 서점을 찾았다. 근처에 교과서까지 파는 꽤 큰 서점이 마침 있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서가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주인분께 여쭤보니 책 내용만 안 찍으면 된다고 하셔서 여기저기 우리 회사 책이 꽂힌 서가를 살펴봤다. 내 이득만 취하고 그냥 떠나기 뭔가 죄송해서 어지러운 마음에 읽으면 좋을 책이 없나 둘러보다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발견했다. 이어령 교수의 책은 언젠가 한번 꼭 읽어야지, 했던 건데... 인문학 분야의 서적이 아니라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라 평소에 읽고 싶었던 것과는 방향이 약간 다르지만, 나도 엄마의 딸이고, 딸의 엄마이기 때문에 그냥 손이 갔다.
이어령 교수의 딸이 이민아 목사이며, 이민아 목사가 김한길 국민의 당 전 대표와 결혼했던 적이 있었으며, 이민아 목사가 아들을 잃었고, 또 시력을 잃을 위기를 넘긴 이후에 암 투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등을 하나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쓰는 편지' 정도의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읽으면서 눈물을 참느라 혼쭐이 났다.
자칫 딸에게 하는 자기변명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을 것 같지만, 딸에 대한 사랑이 구구절절이 박혀 있는 글이었다. 기독교 색채가 많이 보이는 부분은 그냥 슥- 훑어 읽기만 했지만, 인문학의 지성인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인이 된 과정은 꽤 흥미로웠다. 중앙일보 기사 등에는 딸이 시력을 회복하는 기적을 보고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나와 내 배우자를 닮은 자식을 낳아서 키우고, 그 자식이 나보다 더 일찍 세상을 뜨는 걸 지켜보는 건 대체 어떤 심정일까.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그저 당연히 슬프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뜬다'라는 어구가 엄청 무겁게 느껴진다. 내가 만들어낸 생명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다는 건, 그 한 생명의 생과 처절하게 맞닿아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처음과 끝의 시점에서 예측하거나 돌이켜 보면,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일이든 서로의 몸과 마음에 흔적, 생채기를 내게 된다. 그게 기쁘고, 그게 또 슬프고 하여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에 휘말릴 것 같은데, 이어령 교수는 굉장히 쉬운 말로 그 감정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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