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3. 11:33ㆍBook
아이가 다니는 #수지공동육아 어린이집인 #작은나무숲어린이집 4월 교육 모임에서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나는 육아서는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읽다 보면 우리 아이를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계'에 빗대거나 경험에 비추어 잔소리처럼 늘어놓는 것 같아서이다. 그러나 육아서가 아닌, 어린이와 아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은 환영이다. 얼마 전에 읽은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가 그런 책이었다. 박혜란 선생님의 책도 육아서가 아니라 에세이 같았다. '나는 이렇게 키웠으니 너도 그렇게 키워라'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키워 봤는데 ... 넌 어떻게 키울래?'라고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육아를 하면서도 아이와 부모가 둘 다 행복해질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책이기도 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마흔 살에 다시 이화여대에서 여성학을 전공한 여성학자인 박혜란 선생님은 건축과 교수, 가수, PD로 일하는 세 아들을 키웠다. 그 아들 모두 서울대 출신. 자유롭게, 그저 사랑하고 껴안아 주기만 했는데 아들들은 공부에 재능이 있어 그랬는지 셋 다 서울대에 합격했고, 주위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아이를 서울대에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만약 박혜란 선생님의 자녀들이 소위 명문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 다녔거나 아예 다니지 않았더라면 이런 육아서가 나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했다. 나부터도 그렇다. 이 책을 읽으며 '아들 셋을 서울대에 보냈다고? 오! 나도 선생님처럼 키우면 우리 애가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시커먼 욕망을 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은 '남들처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안해하지 않고 나와 아이의 행복을 위해 직진할 수 있는가'였다.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남편과 나는 한 가지 서로 확실히 확인한 게 있다. 바로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것. 의무교육 대상자가 되기 전에는 그저 부드러운 흙을 만지고, 놀고, 그 위에 단단히 서서 땀 흘리며 뛰어다니고 노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취학 아동이 되면 사정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공부를 잘해야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까, 적성을 찾으려면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혼자 초조해할 것이다. 아이는 곧 내 초조한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이 스트레스가 한계치를 넘어서면 어느 곳으로든 부정적으로 터질 것이다. 아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할 수도 있고, 아이와 나의 관계는 틀어질 것이다.... 이렇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가다 보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굳건한 심지를 갖고 아이와 나의 행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흔들릴 때마다 아이를 껴안고 무엇이 더 행복한 길인지 같이 고민할 것이다. 또 같이 공동육아했던 아마들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도 나누고, 이런 '아이의 행복이 곧 성공'이라고 이야기해 주는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약간 아쉬웠던 점은 여성학자인 글쓴이가 육아의 주체를 '엄마'로만 지정한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 육아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지만, 문장의 주어나 목적어를 '엄마'가 아닌 '부모'로 썼더라면, 육아는 엄마와 아빠가 같이 감당해야 할 숙제라는 사실이 좀 더 와닿았을 것 같다. 엄마는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며 해야 할 일을 당연히 하는 사람에 그치지만, 육아와 가사를 '도와주는' 아빠는 가부장제의 프레임을 벗어난 '멋진 아빠'가 된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이사장이셨던 박혜란 선생님은 책에 '어린이 행복 선언'도 수록해 주셨다. 책에서 보니 반갑고, 이게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거였구나,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우리 아이라면 혹시 '닌텐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쓰지 않았을까. . . . ㅎㅎㅎ
마음에 들었던 구절을 옮겨 적어 본다.
많은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 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못 벌어서 미안해한다. 엄마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지 않은 걸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비싼 장난감, 더 비싼 옷을 사 주지 못해서 미안해한다.
아이를 언젠가는 떠날 손님이라고 생각하면 아이에 대한 생각이 확 달라진다. 내 맘보다 아이의 맘을 살피게 되고, 어떻게든 늘 잘해주고 싶고, 단점보다는 장점에 더 눈이 가며, 조그만 호의에도 고마워하게 된다. 그리고, 먼 훗날의 이별이 문득문득 떠올라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애잔해진다. ...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아이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삼 모든 것이 고맙게 느껴진다.
성적은 엄마 마음대로 올리기 어렵지만 아이의 인품은 엄마가 마음먹는 대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사람이 되어라, 저런 사람이 되어라 시시콜콜 잔소리 늘어놓지 않아도 엄마가 일상생활에서 몸으로 모범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아이의 적성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시간을 많이 주는 것이다. ... 그러니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아이가 혼자 클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고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엄마들로부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키울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이을 리 없다. 고작해야 '미안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짓만 아니면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해도 말라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 금상첨화이고'라는 미적지근한 조언에 그칠 수밖에.
부모는 늘 아이들한테 '나는 항상 네 편이다'라는 믿음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핀잔주지 말고 귀 기울이고 공감을 표해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돈이나 학벌이 아니라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서라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내 자식이 성공하기 위해선 남의 자식을 밟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모성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모성은 남의 아이까지도 사랑할 줄 안다. 나아가 생명 있는 모든 것에까지 사랑의 영역을 넓혀 간다.
아이와 함께 우리가 사는 건물의 공동현관에 서면,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 비밀번호를 누른다. 그 일은 언젠가부터 항상 아이의 몫이었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들고 있는 짐이 무거운데 아이가 자꾸 번호를 틀릴 때, 속에서 짜증이 꿈틀거리지만 그저 차분히 몇 초만 기다려주면 되는걸. 다행히 아직까지는 공동현관에 같이 섰을 때 한 번도 짜증 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와 내가 함께하는 장면에서, 내가 우위를 점하고 아이에게 짜증을 낸 일은 분명히 있었다. 앞으로 짜증이 나면 심호흡을 하고 숫자를 하나, 둘, 셋 세면서 까치발을 들고 작은 손가락으로 뭔가 해 보겠다고 애쓰는 귀여운 뒷모습을 떠올려야겠다. 마음껏 실수해도 되는 자유를 짓밟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같이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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