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10. 23:06ㆍGrowing with My Child
빨리 챙기라고 채근하지도 않고, 큰 소리 한번 나지 않은 아침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 정리를 대충 끝낸 다음, 배구 센터에 배구를 하러 갔다. 수업은 10시에 시작하지만, 9시 30분쯤 도착해서 미리 와 있던 멤버들과 함께 몸을 풀고, 둥글게 서서 언더토스로 공 주고받는 연습을 했다. 3월 중순에 배구를 시작한 터라, 나는 아직 초짜 그 자체이다. 나를 포함해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네 명이 있는데, 그중에 내가 가장 나이가 많다. 나이는 숫자라고 생각하지만, 신체에 있어서는 다른 것 같다. 근육이 붙는 속도는 느리고, 근육이 없어지는 속도는 빠르다.
자책, 희열, 즐거움이 뒤섞인 채로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 보니 벌써 12시 반.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청경채와 버섯 및 달걀로 점심을 먹고, 그동안 묵혀두었던 집안일을 분주한 마음으로 하나둘 했다. 설거지, 걸레로 가구 닦기, 구연산 수 에어컨에 뿌려서 에어컨 가동하기 (냄새를 못 맡기 때문에 퀴퀴한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는 내일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면 알 수 있다;),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하기, 빨래, 아이 옷 애벌빨래 등.
아이가 핸드폰을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어머니, 이든이 학원에 잘 왔어요~"라고 전화해주시기 전까지 몰랐다. 구글 Family Link 앱을 열어 위치를 확인해 보니 우리 집으로 뜬다. Oh, my ... 하교하고 친구랑 놀다가 2시에 줄넘기클럽에 가고, 3시에 학원을 가는 일정이라고 알려주고, 장소 옮길 때마다 전화를 주기로 했건만. 어쨌든 피아노학원 끝날 때쯤을 어림잡아 학원 앞으로 갔다. 5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는데, E가 나온다.
"엄마! 나 오늘 핸드폰 안 가져 갔어!"
"알아 ㅎㅎ"
"그래도 시간 맞춰서 잘 갔어!"
"그것도 알아, 정말 잘했어."
칭찬을 해주니, 엄마한테 혼날까 봐 조마조마해하던 아이 얼굴이 활짝 편다. 예쁜 웃음이 나온다.
집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조잘대며 집까지 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아이가 가방에서 시험지 한 장을 꺼내온다. 오늘 국어 단원평가를 본다고 했었는데, 그 시험지인가 보다.
"엄마, 나 너무 많이 틀렸어...으허헝.....엉.............." 이러고서는 갑자기 서러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일단 아이와 소파에 앉아 안아서 달랬다.
"아이구, 생각보다 많이 틀려서 놀랐어? 당황했어? 많이 속상했구나... 아이구 우리 아가."
화장실에 가서 세수하고 오라고 했더니, 말끔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앉는다.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틀린 거고 (그렇다 집에서 정말 공부를 안 시키고 안 한다 ㅎㅎㅎㅎ) 지금 틀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알 수 있다고, 그게 진짜 '공부'라고 했다. 그랬더니 E는 대견하게도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틀린 거 다시 풀어볼래."
정말 좋은 마음가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는 머리를 쓰다듬는 걸 좋아한다. 머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 주니, E는 살포시 웃으며 시험지를 가지고 자기 방으로 갔다. 얼마 후에 다시 나와서, 나와 함께 풀어보긴 했지만, 아이가 오늘 한층 더 큰 것 같다.
배구하고 나서 항상 그날 찍은 영상을 주장이나 다른 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준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엉거주춤하게 서서 무릎도 제대로 못 쓰고 그저 팔만 허우적거리는 멀대 같은 사람이다. 나의 못난 모습을 직시하고, 고치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아이의 태도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아이는 정말 믿는 만큼 자란다는 사실을 오늘 또 느낀다. 채근할 필요 없이, 스스로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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