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무소속 상태

2024. 2. 18. 13:33Growing with My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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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사회적 무소속 상태'가 된다.
물론 내가 지어낸 어구이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으로 지냈던 기간을 합쳐보니 6개월도 채 안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다.
소속을 바꾸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맡게 되어서.
한 사람, 그것도 내 아이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어린 시절'을 책임지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
아이는 누가 키워도 자란다, 꼭 엄마가 키울 필요 없다, 사람 쓰면 되지 않아?, 등등 혹하는 말들을 들었다.
나는 살면서 딱히 '이건 꼭 해야겠다'라고 강렬하게 뭔가를 원했던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육아는 좀 달랐다. 내 손으로 내 아이를 키워야 나중에 누구에게 미안해하거나 누구를 책망할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좀 더 원초적으로는 내가 한 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아이가 커서 떠올릴 어린 시절에 상처가 될만한 일을 최대한 막아주고 싶었다. 물론 나는 아이의 상처를 미리부터 막고 방어할 수 있는 그런 불가능한 일을 꿈꾸지 않는다. 아이는 살면서 누군가로부터, 또는 어떤 일로부터 숱한 상처를 받을 거다. 적어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서 내가 아이에게 주는 상처를 최소화하고 싶다. 살면서 가족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다짐하는 게 있다.
1. 미래를 간절히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기를 낳고 근 28개월간 매일매일 언젠가를 기다렸다.
아침에는 아기를 재우고 쉴 수 있는 밤을 기다리고, 
월요일엔 쉴 수 있는 주말을 기다리고, 
혼자 아기를 볼 때는 남편이 아기를 봐주길 기다렸다.
그러다 혼자 너무 지쳐갔다. 그냥 아이와 함께하는 매 순간을 즐겨야 했는데, 그런 적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기다리면서 혼자 슬퍼했던 시간이 있었던 것 뿐이다.
육아와 살림이 내 일상과 목표가 된 이상, 뭔가를 기다리지 않고 아기가 자라는 모습과 일상 자체를 즐기도록 한다.
일상의 행복은 항상 내가 준비된 만큼만 내게 왔던 것 같다.

2. 게을러지지 않는다.
빠짝빠짝- 빠릿빠릿- 아침에 영어 공부하고, 저녁에 육아일기 쓰고, 오후 남는 시간엔 혹시 있다면 외주 일을 하고, 일어/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요리와 살림 스킬을 집중 연마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요리에 관심이 없었는데, 가족이 생기고 보니 요리 스킬은 꼭 장착해야 할 필수 능력치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퇴사 선물을 받고 인사하고 마지막 서류 등을 정리하는 마지막 날.
이제 몇 시간 후면 안녕이다. 
육아휴직 전에는 내 일에 스스로 만족했던 것 같은데, 휴직 이후엔 아니었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자괴감이 들었다.
난 혼자 잘하던 사람이었는데...
엄청 힘든 시간들을 거치면서 절절하게 배운 게 있다면, 
혼자 잘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결국 누군가에게서 조금, 다른 누군가에게서 조금, 또 조금.. 그렇게 조금씩 받은 마음으로 내 삶이 지탱된다는 사실. 
그걸 모르고 살았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내가 나약하다는 걸 뜻한다고 여겼었다. 그게 아닌데.
나이가 들어야만, 내가 변해야만 보이는 게 있다. 

모두 고마웠어요-

아기가 가끔 잠이 일찍 깬 날은 나에게 한참을 안겨있으려고 한다.
"엄마, 회사 가지 마요오오~~"라고 애교섞인 목소리로 부탁하기도 하고,
"엄마 오늘 회사 가요?"라고 궁금한 듯 물어보기도 하고,
"우리 같이 살아요~"라고 긴 시간 집을 비우는 나를 회유하기도 한다.
할머니의 엄청난 육아 스킬로 아기를 잘 떼어놓고 뒤돌아서며 매일 정말 매일 마을버스 안에서 눈물을 삼켰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가장 좋다.

다음 주 부터는 당당히 답할 수 있다.
"엄마 오늘 회사 가요?"
"아니! 너랑 하루 종일 계속 같이 있을 거야! 너랑 같이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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